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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민주공화국의 위기: 다수결의 독주를 넘어 ‘공화적 절제’로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6-02-19 09: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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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의 위기: 다수결의 독주를 넘어 ‘공화적 절제’로



 

▲최창호 변호사

1. 서론: 다수결은 정의의 종착지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다수결’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전지전능한 ‘황금방망이’로 오남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의 승리, 국회의 의석수, 실시간 여론조사 수치가 곧 정당성의 전부인 양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결은 권력을 형성하는 '절차'일 뿐, 그 자체가 '정의의 실체'라고 할 수는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0조가 선언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제37조 제2항이 설정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금지' 원칙은 다수결이라는 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넘을 수 없는 규범적 한계를 설정한다. 다수가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국가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헌법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2. 고전적 경고: '다수의 폭정'이라는 민주주의의 그림자


민주주의의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싹튼다. 고전 사상가들은 일찍이 이를 경고한 바 있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법률적 폭주보다 무서운 것이 '정신적 압박'이라고 보았다. 다수의 판단이 도덕적 진리로 군림하는 순간, 비판은 '배신'으로 치부되고 토론은 위축된다. 현대의 온라인 군중심리와 여론 재판은 토크빌이 우려한 '토론의 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단 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침묵시키는 것은 사회 전체의 '자기교정 능력'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일갈한 바 있다. 소수 보호는 시혜적 동정이 아니라, 다수 스스로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생존 전략이다.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선례를 만드는 순간, 미래의 어느 날 다수에서 소수로 전락할 자신들의 방어기제마저 파괴하는 모습이 펼쳐질 수 있다. 한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파벌의 존재를 인간 본성으로 인정했다. 따라서 공화제의 목적은 파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을 통해 어느 한 파벌이 공공선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절제'시키는 데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3. '민주'와 '공화'의 이중주: 권력의 원천과 행사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 '민주공화국'은 두 가치의 정교한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민주(Democracy)가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다면, 공화(Republic)는 그 권력이 법의 지배와 공공선에 의해 제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민주 없는 공화는 엘리트주의로 흐르고, 공화 없는 민주는 전제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단순한 다수결 원리가 아니라 자유, 권력분립, 사법권 독립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체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헌법 제1조 제1항의 '민주공화국'은 단순히 수식어의 결합이 아니다. 민주는 치자와 피치자의 자아동일성, 즉 '숫자'를 통한 정당성 확보를 의미하고, 공화는 사익을 넘어선 공공선(Res publica)과 법의 지배에 의한 '절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둘의 균형이 깨지고 '공화'가 거세된 '민주'만 남게 될 때, 그것은 곧 '다수의 폭정'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이 '숫자의 폭주'를 '이성의 규범'으로 제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4. 사법권 독립: 다수의 열정을 제어하는 '이성의 브레이크'


사법권 독립은 종종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았기에 다수의 일시적 열정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이유로 사법부가 공격받는 현 상황에서, 사법부는 다수에 대한 적대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 결정을 헌법이라는 질서 안에 묶어둠으로써, 그 권력이 정당성을 유지하도록 돕는 장치로 파악하여야 한다. 사법권이 정치화되거나 다수의 힘에 종속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통제 불능의 에너지로 변해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위험성에 노출된다. 사법부는 다수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존재가 아니라, 그 열정이 헌법이라는 그릇을 깨뜨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안전밸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5. 결론: 다수의 힘 위에 놓인 '규범의 질서'


민주공화국의 위기는 다수가 존재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스스로를 통제할 제도와 규범을 경시할 때 발생하게 된다. 공화국은 투표일 하루의 열정이 아니라, 선거 이후의 일상속에서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존중하고 법적 한계를 수용하는 '집단적 절제'에 의해 유지된다. 다수결이라는 망치가 헌법이라는 유리 상자를 깨뜨리는 순간, 그 피해는 소수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결국 공동체 전체가 파편화된 사회의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우리가 수호해야 할 것은 승리한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 위에 놓인 규범의 질서다. '절제(Self-restraint)'라는 공화주의적 핵심 가치가 우리 사회에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깊이 있는 헌법적 혜안이 우리 사회에서 팽배한 '다수결 맹신'을 치유하는 귀한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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