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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왕도와 패도_정승열 법무사(대전)

이선용 / 기사승인 : 2022-04-25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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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제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제왕학(帝王學)은 성학(聖學)이라고도 한다.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진덕수의 대학연의(大學衍義), 오긍의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제왕학 교과서로 알려져 있는데, 그 핵심은 왕도(王道)다. 맹자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인(仁)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을 왕도정치라고 했는데, 그 실천 방법으로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고 했다. 즉, 백성들의 삶에 물자가 넉넉하게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왕도에 대비되는 것이 패도(覇道)인데, 패도는 통치자가 자기의 욕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칼을 보여주며 힘에 의한 통치를 한다. 그 힘은 눈에 보이는 무력이나 억일 수도 있지만, 법이라는 무기로 통치한 진시황 때 이사(李斯)의 법가사상이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여서 서로 싸우고 죽이기를 반복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었다. 그 결과 춘추시대까지도 인(人)은 지배층만을 의미하는 개념이었고, 피지배층을 민(民)이라고 했다. 그리스의 아테네 시대에도 시민은 아고라(Agora)에 모여서 발언하고 패각투표로 선거권을 가진 층이었고, 여성과 노예, 포로들은 피치자로서 살아있는 재산에 불과했다. 춘추시대에 민은 눈(目)을 상처 내서 멀게 만든 상형문자로서 노예들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사고 팔리고, 주인이 죽으면 순장되거나 제물로 바쳐지는 ‘살아있는 재산’에 불과했다. 갑골문에서는 인신 공양의 내용과 방법이 매우 상세하게 나오고, 죽이는 방법도 12가지나 되었다. 가령, 십이지(十二支)의 하나인 묘(卯)자의 글자체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노예들을 제물로 삼을 때는 세로로 두 토막을 냈다. 소나 돼지 같은 동물을 해체할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또, 피 혈(血)자도 제기(皿) 에 담긴 사람의 피를 나타낸다.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周)는 왕조 교체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하늘로부터 천하를 물려받은 천자(天子)가 덕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에게 통치권이 옮겨갈 수 있다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을 확립했다. 주 왕실은 공신들에게 봉지를 주어 공납을 받고 군사 지원을 매개로 한 봉건제를 형성하고, 또 장남이 대종(大宗)이 되어 아버지 직위를 계승하고, 그 이외의 자식들은 소종(小宗)이 되어 대종의 신하로 활동하는 종법(宗法)을 만들었다.

 

이런 봉건제와 가부장제는 지배층뿐만 아니라 민간에도 적용되었으나, 공자가 그토록 찬양한 주나라 때 ‘식인의 형(刑)’이 정식 율령이 되었다. 크고 작은 전쟁에서 패한 포로들은 승자들의 "고기 요리"가 되었는데, 상황에 따라서 병사 이외에 백성들도 하루에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 "군대의 식량"으로 사용되었다. 또, 정쟁에서 희생당한 관료들도 승자의 먹이가 됐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미녀 달기에 빠져서 주지육림이란 고사성어를 만든 상나라 주왕(紂王)을 최초로 식인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주왕은 삼공 중 한 사람인 구후(九侯)의 딸이 절세미인이란 말을 듣고 첩으로 삼자, 이에 분노한 구후가 악공과 함께 주왕을 죽이려다가 발각되어 주욍은 구후를 해(醢)로 만들고, 악공은 포(脯)로 만들었다. 또, 자신에게 간하는 신하 익후를 자(炙)로 만들었다. 해는 인육을 소금에 절인 육젓이고, 포는 인육을 찢어서 말린 것, 자는 불고기로 요리한 것이다. 또, 사기열전은 한 고조 유방이 황제가 된 후 회남왕 팽월(彭越)을 역모죄로 죽인 후, 간장에 절여 육장(肉醬)을 만들어 제후와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수의 심국지에서는 유비도 인육으로 만든 "포"를 즐겨 먹었다고 했는데, 수양제도 자신을 거역하는 신하를 삶아 죽인 뒤, 그 국물을 문무백관에게 나눠주어 마시게 했다.

 

중국에서 식인 풍습은 당 시대에 보편화된 식문화가 되어서 사람고기를 상육(想肉)이라고 하여 즐겨 먹었는데, 측천무후 때는 인육이 많이 유통되어 개고기의 1/5 정도에 불과했다. 구당서 황소 열전에는 황소 군대가 동군을 300일간 포위하면서 허(許), 여(汝) 등 부근 10여 주(州)의 사람들을 잡아다가 통채로 맷돌에 갈아 병사들의 식용으로 공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용마채(舂磨寨)라고 하는 커다란 인육 믹서기를 구루마에 수백 개 싣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작업장을 설치하여 포로는 물론 백성을 대규모로 징발하여 군량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5대 10국의 혼란기를 거친 송나라 때 인육 판매를 금지했지만, 이미 보편화된 식문화를 바꾸지 못하고 흐지부지하다가 그 법마저 폐기되었다. 전국에는 인육을 사고파는 시장이 많았고, 인육은 납치, 인신매매 등으로 공급되었다. 처형된 죄수의 시체도 인육으로 팔렸다. 원나라 때 도종의가 지은 ‘철경록(輟耕錄)’, 송장작이 지은 ‘계륵편’에는 인육을 요리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철경록에는 친구를 젓갈로 만들어 먹은 설진, 자기의 첩을 삶아 먹은 고찬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 인육은 늙은이의 고기는 질기고 탄력성이 없어서 국거리용으로밖에 쓰지 못해서 값이 싸고, 어린 아기는 부드러워서 여러 요리에 쓸 수 있어서 가장 비싸다고 했다.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서 자신이 복주(福州)에서 목격한 식인 풍습을 보고 ‘사람도 병으로 죽은 것만 아니면, 횡사한 사람의 고기도 맛있게 먹는다. 병사들도 잔인하기 짝이 없어서 그들은 머리의 앞부분을 깎고, 얼굴에 파란 표식을 하고 다니면서 창칼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 뒤, 제일 먼저 피를 빨아먹고 그다음에 인육을 먹는다. 이들은 틈만 나면 사람을 죽이고 그 피와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명나라 때도 개봉(開封). 중경(重慶) 등지에 대규모 인육 시장이 있었으며, 사천(四川)에는 남자 인육이 한 근에 7전, 여자는 8전에 거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죄인을 처형하는 사형장에서 민중들은 사형수의 고기를 먹었다. 명의 원숭환(袁崇煥) 장군이 청의 계략으로 역적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을 때, 군중이 몰려와서 그의 살점을 모두 발라가는 바람에 뒤늦게 시신을 수습하러 온 원숭환의 부하들은 뼈만 수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청나라 때는 말레이시아에서 인육(?)을 수입하여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팔기도 했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했던 증국번(曾國藩)은 그의 일기에서 1860년 장쑤성에서 인육은 한 근에 90전이었는데, 태평천국 난으로 인플레로 130전까지 폭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과 귀족들이 짝짜꿍하며 권력을 분점하면서 통치하던 중세사회에서 만민평등과 주권재민 사상을 주창한 혁명적인 사상가들의 출현으로 수많은 희생과 피를 흘린 결과 오늘날 민주주의가 시행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다수결이라는 결론에 급급하고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토론과 타협이 없는 다수결은 곧 중우정치(衆愚政治)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했는데, 작금의 상황은 중우정치에 법치주의라는 구호 아래 진시황제 때의 법가사상에 못지않은 패도가 자행되고 있다. 국민은 실험실의 몰모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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