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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경계인(境界人; border rider)_정승열 법무사(대전)

이선용 / 기사승인 : 2020-06-04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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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 법무사.JPG

경계인(境界人; border rider)이란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에즈라 파크(Robert E Park; 1864~1944)가 나라 없이 유랑생활을 해온 유대인들이 유럽문화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면서 이들은 두 개의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확실한 소속감도 느끼지 못한 사람이라고 정의한 이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파크는 경계인을 기존 문화와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이라는 체험으로 넓은 안목과 예리한 지성, 합리적 관점을 가짐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을 갖춘 장점을 설명했는데, 주변인(周邊人; marginal man)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암울했던 군사 정권 시대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유학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뮌스터대학 송두율 교수(1944~ )가 2002년 [경계인의 사색]이란 저서에서 자신을 한국 정치사회에서의 경계인이라고 자평한 이후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소속되었던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종전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금방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집단의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그 어느 곳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은 오늘날 유럽 사회에 미친 유대계인들 이외에 아프리카에서 미 대륙으로 이주한 흑인은 물론, 농촌에서 대도시로 전입하거나 어느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 소수민족 또는 개종한 사람들도 주변인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똑같은 형태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인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큰 저항 없이 통합하는 조정능력이 요구된다. 만일 이러한 조정능력 없이 사상과 행동을 획일적으로 강요할 때 그 사회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 되어 발전해 나갈 수 없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해방 후 좌우 이념 갈등의 벽을 넘지 못한 우리는 한반도 남북에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고 지금에 이르면서 꾸준히 이념 갈등이 빚어져 남북대립은 물론 남남갈등에 이르렀다. 진보 좌파 정권의 출범 후 지난 4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입법부를 장악하게 된 현 정권의 집권 2기는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킨 많은 보수진영의 경계인을 양산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우리의 보수세력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좌파만큼 철저하지 못한 얼치기가 많아서 예상보다 미약한 갈등으로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나타난 결과만이 아니라 주변인의 위치에서 주류사회로 접근하려는 끊임없는 자기 노력과 개발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상과 행동의 이질성과는 전혀 다른 요소이지만, 어쩌면 경계인을 양산하게 해주는 요인이 된 인종의 혼합문제는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나 징기스칸의 유럽 정복에서 나타나지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개척(?)된 아메리카는 정복자들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이 현대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대륙 발견이후 정복자들에 의해서 플랜테이션(plantation)이 전개되면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와 백인 간의 혼혈인도 태어나기 시작했는데, 1세대 혼혈인을 하프(half), 2세대 혼혈인을 쿼터(quatre)라고 불렀다. 이것은 영어의 1/2, 1/4을 의미하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흑인과 백인 사이의 1세대 혼혈인을 물라토(mulatto; 50% 혼혈)라고 하는데, 이들은 다시 순수 백인과 혼인한 제2세대 쿼드룬(quadroon; 75% 혼혈), 제3세대 옥토룬(octoroon; 87.5% 혼혈), 제4세대 퀸드룬(quintroon; 93.75% 혼혈), 제5세대(hexadecaroon; 96.875% 혼혈)로 나누기도 한다. 물라토는 흑인으로 취급하지만, 2세대 아래부터는 백인으로 간주한다. 또, 스페인계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오 사이의 혼혈인을 메스티소(mestizo)라 하고, 인디오와 백인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인을 잠보(jambs)라고도 한다. 몽골족 아시아계와 흑인 사이의 혼혈인은 삼보(sambo)라고도 하는데, 미 대륙에서도 잉글란드 계가 많은 동부 13주 이외에는 혼혈인이 많다. 혼혈인은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남미 지역에서 보면, 이들은 유전학상 잡종강세로 튼튼할 뿐만 아니라 쿼드른과 옥토룬의 여성이 가장 매력적인 미인이라고도 말한다.

 

돌아보면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도 전형적 주변인이다. 그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물라토로서 2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와 함께 아시아계 소수민족이 많은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피부 색깔에 절망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한때 마약에 빠지기도 했으나, 미국 사회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후 변호사가 되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주민의 지지를 얻어 상원의원이 되고,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세계제국으로 자부하는 미국 사회에서 주변인 오바마의 승리는 최소한 소수민족 이민자나 빈민계층에 커다란 희망과 자신감을 안겨주는 사건이 되기에 충분했는데, 남북갈등에서 영호남 갈등, 진보보수 갈등 등 다양한 남·남 갈등이 넘치는 우리 사회에서 언제쯤 경계인이 해체되어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될는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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