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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정보사회에서 프라이버시와 국가권력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6-11-06 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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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회에서 프라이버시와 국가권력”

 

 



 

▲최창호 변호사
1. 프라이버시는 죽지 않았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인류 역사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프라이버시는 끝났다는 선언이 반복되곤 한다. 인터넷, 스마트폰, CCTV, 얼굴인식, 생체정보,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정보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수집·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법학자 대니얼 솔로브(Daniel J. Solove)는 프라이버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침해의 방식이 변화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2025년 저서 『On Privacy and Technology』에서 프라이버시를 하나의 간단한 개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프라이버시는 비밀을 숨기는 것만도 아니고, 자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것만도 아니다.


2. 정보의 문제는 곧 권력의 문제다

솔로브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와 권력의 관계이다. 정보는 단순한 자료가 아니다. 누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과 조직 사이의 ‘힘의 관계’가 변화한다. 과거에는 개인정보가 여러 장소에 흩어져 있어 한 개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는 인터넷 활동, 구매기록, 위치정보, 신용정보 등을 결합하여 한 사람에 대한 정교한 프로파일을 만들어 낸다. 솔로브가 『The Digital Person』에서 ‘디지털 dossier’라고 부른 현상이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보관에 그치지 않고 신용평가, 채용, 마케팅, 수사 등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에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정보사회에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내 정보가 공개되었는가”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질문은 “누가 내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내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이다.


3. 정보는 수집되는 것에서 판단되는 것으로 변했다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정보의 양만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 정보가 지식으로 변환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솔로브는 이를 정보와 지식, 판단과 결정, 사고와 행동, 권력이라는 네 가지 차원에서 분석한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과거의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했다면 오늘날의 AI는 정보를 분석하여 개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추론한다. 개인의 행동패턴을 분석하여 신용위험이나 소비성향을 예측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래의 행동까지 판단하려 한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로부터 만들어진 판단이다.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거나 특정한 편견이 알고리즘에 반영되면 개인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자동화된 판단은 인간의 판단보다 객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솔로브는 AI와 예측기술이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약화시키고 적법절차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4. ‘동의했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충분하지 않다

가. 현대의 개인정보 보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동의’이다. 그러나 솔로브는 개인이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프라이버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정보를 특정한 상대방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그 정보가 다른 정보와 결합되어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것까지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과 개인정보의 모든 이용에 동의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나. 솔로브는 이른바 ‘프라이버시 역설’, 즉 사람들이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개인정보를 쉽게 제공한다는 현상을 근거로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정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과 프라이버시라는 가치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5.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을 단순한 도구라고 생각하면 개인정보 문제를 개인의 선택 문제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솔로브는 기술이 사회의 정보 흐름과 권력관계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본다. 디지털 기술은 정보의 이동속도와 범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한 번 유통된 정보는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기 어렵고,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알기 어렵다. 솔로브는 이러한 데이터 흐름의 증가가 개인의 정보통제력을 약화시킨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개인정보 보호는 개인에게 “조심해서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기업과 국가의 구조와 권한 자체를 법으로 규율해야 한다.


6. 프라이버시는 자유의 공간이다

프라이버시는 오롯이 혼자 있는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 프라이버시의 중요한 기능이다. 국가나 기업이 개인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실제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 자신의 검색기록이나 인간관계, 정치적 견해, 사회활동이 지속적으로 기록된다고 생각한다면 표현과 행동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프라이버시는 표현의 자유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적 공간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의 보호는 결국 자유로운 시민을 보호하는 문제로 귀착한다.


7. 정보권력에도 법치주의가 필요하다

솔로브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프라이버시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25년 저서에서 프라이버시 문제의 상당 부분이 기술 자체보다 조직과 데이터 생태계,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사되는 권력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법은 기술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권력의 구조 자체를 규율해야 한다. 이는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는 범죄수사와 행정목적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무제한적으로 결합할 수는 없다. 정보의 최소수집, 목적 외 이용의 제한, 정보의 정확성, 보유기간의 제한, 국민의 접근과 정정, 자동화된 판단에 대한 이의제기, 독립적인 감독과 사법적 통제가 필요하다.


8. AI 시대의 새로운 헌법적 과제

인공지능 시대에는 프라이버시를 단순한 개인정보 보호법의 영역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AI가 개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평가와 예측을 수행한다면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표현의 자유, 평등권, 적법절차가 동시에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회에서 국가권력의 통제는 이제 명령과 강제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에 관한 정보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그 정보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AI가 그 정보로 무엇을 추론하는지, 그 결과에 대하여 국민이 어떻게 다툴 수 있는지를 함께 통제해야 한다.

결국 솔로브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프라이버시를 과거의 사생활 개념에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보가 권력이 되는 시대에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헌법적 장치이다.

정보를 많이 가진 국가일수록 더 강한 책임을 져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에 대한 법적 보호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정보사회에서의 법치주의란 국가가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가 정보를 통해 행사하는 새로운 권력까지 헌법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을 의미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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