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함무라비 법전과 현대 입법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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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함무라비 법전과 현대 입법자의 무게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6-03-24 11: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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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법전과 현대 입법자의 무게”

 

 

 


▲최창호 변호사
건축가가 집을 잘못 지어 주인이 죽으면 건축가를 사형에 처한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 제229조는 오늘날 기준에서는 가혹하다고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분명하다. 공적 안전을 전제로 전문적 권한을 행사하는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공적 안전을 전제로 전문적 권한을 행사하는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 책임’이 따른다는, 인류 초기 법의식을 선언하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형사사법 체계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다시 설계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신설, 그리고 중대범죄수사청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입법은 단순한 제도 개편을 넘어 수사와 기소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시도다. 문제는 이 거대한 설계가 충분한 검증을 거쳤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구조가 준비되어 있는지에 있다.

개편안의 취지는 분명하다. 권한 집중을 완화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대한민국 검찰청이 보유해 온 직접 수사 기능을 축소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함으로써 권력 간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를반대하는 측에서는 수사 역량의 분산, 사건 처리 지연, 그리고 수사·기소 협력 약화에 따른 형사사법 효율성 저하를 우려한다. 결국 핵심 쟁점은 권한 분산이 실제로 책임성과 효율성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라 할 것이다.

이 논쟁의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입법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입법자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아래에서 자유롭게 입법 활동을 수행한다. 이는 필수적인 제도이지만, 동시에 입법 결과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한계도 지닌다.

만약 제도 개편 이후 수사 공백이나 재판 지연, 기본권 침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는 정책 실패로 평가될 뿐 입법자의 법적 책임으로 귀속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책임 구조의 공백 속에서 ‘법왜곡죄’와 같은 새로운 규율 논의가 등장하고 있으나, 그 역시 사법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라는 또 다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처벌의 강화가 아니라 입법의 품질이다. 현재의 책임 구조는 위헌법률심판, 선거, 국가배상이라는 사후적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사법 체계와 같이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는 사전적 검증과 정밀한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입법 영향 평가의 실질화, 일몰제 도입, 전문적 숙의 과정 강화 등 제도적 보완이 요구되는 이유라 할 것이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혁은 언제나 정교한 설계를 전제로 한다. 함무라비 법전이 남긴 교훈은 단순한 형벌의 엄격함이 아니라, 권한을 행사하는 자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에 해당한다. 검찰의 폐지는 당파적 이익에 치우치고, 국민의 기본권을 도외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청이 사라지고 새로운 제도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만약 형사사법 체계의 균형과 안정성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특정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다. 입법자는 정치적 정당성뿐 아니라 제도의 완성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정밀함이다.

함무라비 법전이 제시한 ‘부실 건축물에 대한 건축가의 생명 책임’이라는 서늘한 원칙은, 4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입법 책임론’과 맞닿아 있다. 이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증적 검증이 필요한 시기이고, 무엇보다 ‘법이라는 구조물’을 설계하는 자로서의 신중한 책임 의식이 필요한 때가 아닐 수 없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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