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설성제의 다락] 어느 이름 없는 외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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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의 다락] 어느 이름 없는 외다리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3-11-27 1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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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름 없는 외다리

설성제(수필가, 논설위원)


날마다 외다리를 건너다닌다. 사방 어느 쪽에서 보아도 쉽게 눈에 띄지 않으며 참 볼품도 없다. 콘크리트 구조물에 매끈하게 발라놓은 시멘트 포장은 바람에 찢긴 듯 군데군데 패어 있다. 도심의 큰 다리 난간에 즐비한 화분 하나도 가지지 못한, 하다못해 날아다니는 풀씨 한 톨도 뿌리내리지 못한 이름도 없는 다리, 그냥 그 마을 그쯤에 있는 외다리라 불린다. 도심에서 외지로 향한 긴 출퇴근 시간이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은 이 외다리 때문이다.

언젠가 동남아 여행에서 본 짐꾼 물소가 떠오른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강물을 거울 삼고 자신을 매무시하며 종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짐을 나르던 소. 비쩍 말라 노쇠했어도 어떠한 하소연 없이 일하던 모습.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자갈 빛 강물 위로 소의 목에 달린 방울 소리가 쩔렁쩔렁 울려 퍼지던 그 풍경. 소는 일생 관광객들의 짐이나 날라주는, 천한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성자처럼 보였다. 낮아지고 낮아진 자신을 받아들이고 묵묵하게 다른 사람의 짐을 져주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인가. 이 외다리 아래도 강물이 무심하게 흐른다. 강가엔 지난여름 햇볕에 구워진 돌멩이들의 눈빛이 반짝이고 억새 무리가 외다리를 향해 끝없는 춤을 춘다.

 

특히 봄여름엔 이 외다리 밑에 낚시꾼들이 모여든다. 검은 방수복과 기다란 장화가 정물처럼 서 있는데 손에 쥔 낚싯줄이 가끔 튕겨 오른다. 외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낚싯줄을 드리운 사람도 있다. 지루한 세월을 낚는 모양이다. 아니 세월을 풀어주고 있다. 젊었을 적에 치열하게 삶의 태엽을 감으며 살다가 이름 없는 외다리로 흘러온 듯하다. 어쩌면 외다리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무명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그러고 보니 대로에 나서지 못한 것들이 모여 있는 곳 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그냥 살아가는 곳. 이들이 서로 지난 과거사를 털어놔야만 서로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있는 모습 이대로, 보이는 그대로가 사실이고 진실이다. 설령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 치자. 무엇을 더 사랑하고 더 위로하고 더 도와줄 수 있을까. 외다리와 주변 풍경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워 황홀하다. 오래 바라보고 싶고 눈 맞추고 싶은 외다리 풍경이다.

폭우라도 내린다는 예보가 있으면 외다리 이편과 저편에 접근 금지의 차단기가 쳐진다. 태풍 부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혹시 사고라도 나면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호등도 CCTV도 없는 외다리.

외다리를 건너다보면 무언으로 소통하는 법을 절로 알게 된다. 아무런 신호가 없어도 원활하게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교통법을 지킬 줄 아는 자만이 건너다닐 수 있다. 차들이 양쪽 다리 입구에 제각각 닿으면 일단 정지하거나 혹은 서행해야 한다. 이쪽에서 먼저 외다리 위로 올라서면 이쪽이 자동 파란불인 셈이다. 줄줄 이어가는 차의 꼬리가 다리 중간쯤을 넘어선다 싶으면 이쪽 입구에 도착한 차라도 정지해야 한다. 저쪽 입구에서 빨간 신호를 지키고 섰던 차들에 외다리를 건널 기회를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쪽 차들이 저쪽 출구를 다 빠져나가면 저쪽 편에 자동 파란불이 들어온 셈이다. 당연히 이쪽 입구는 모두 정지 상태다. 저쪽 입구에서도 미처 따라붙지 못하고 벌써 차 꼬리가 외다리 중간을 넘어온 것이 보이면 또 정지 상태로 들어간다. 이런 질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신기할 정도다. 대로가 아니어도, 규범을 몰라도 사람은 적어도 이런 소양쯤은 갖추고 있다. 이 무언의 신호를 무시하면 그야말로 위법자다. 인간의 질서가 아닌 자연의 질서를 깬 것과 같다. 가끔 이런 위법자를 목격하기도 하는데 범칙금 대신 양심의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이 외다리는 질서와 배려와 양보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무명의 외다리에서 또한 단순함을 본다. 한 길로만 놓여있는 외다리에서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추월할까 말까, 이 길이 좋을까 저 길이 좋을까를 선택하거나 견주거나 재고하는 일이 없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할 때조차 커피 종류를 선택하고, 토핑의 유무를 정하고, 레귤러인지 라지인지, 적립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를 놓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이 시대가 달갑지 않다. 어찌 그리 힘을 허비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지 모르겠다.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사람을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세상이다. 현란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이 외다리같이 단순한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단순함에 마음 주고 몸 주고 시간을 줄 때 예상치 않은 평화로움과 여유가 생겨난다. 양다리 세 다리 네 다리 문어 다리로 걸쳐놓고 일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한 길을 정성스레 가는 것, 그 길이 에움길이든 지름길이든 가는 자의 행복함을 이 이름 없는 한 외다리에서 생각한다.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명으로 살다 무명으로 세상을 떠난다. 세상에 이름나지 않아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유명한 자들이 아닌 그들을 받치고 있는 무명자들이다. 노동자를 위해 기업이 존재하고, 국민을 위해 대통령이 존재하는 것은 약하고 이름 없는 것들을 위해서 힘과 권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은 약한 것, 숨겨져 있는 것, 무명한 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밤하늘의 셀 수 없는 작은 별들로 깊고 푸른 아름다운 밤이 되고, 개미들은 두령이 없어도 제각기 질서 있게 움직임으로 대단한 단합의 사회를 이루어낸다. 모래 알갱이가 모여 유명한 백사장을 이루고, 실개천들이 모여서 강이 되고 세계적 대양이 되는 것처럼 이름이 없어도 존재 자체로 제 역할에 충실한 것들이 있어 세상이 눈부시다. 아무런 치장도 없는 어느 이름 없는 외다리에도 아무 문제 없이 차량들이 움직이고 사계절은 변함없이 순환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길을 지나다니는 나는 날마다 감탄 폭발이다. 이 작은 외다리에서 에너지 충전을 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결코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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