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세상의 창] 정강의 변_정승열 법무사(대전)

  • 비목포20.0℃
  • 구름많음수원19.3℃
  • 비흑산도18.6℃
  • 흐림영광군20.2℃
  • 흐림영덕21.1℃
  • 맑음인천19.3℃
  • 흐림산청19.1℃
  • 맑음서울19.2℃
  • 흐림청주21.4℃
  • 흐림북창원20.8℃
  • 흐림울릉도21.0℃
  • 흐림문경18.8℃
  • 흐림거창19.5℃
  • 맑음강화18.1℃
  • 흐림전주22.5℃
  • 흐림통영20.2℃
  • 흐림남원19.6℃
  • 흐림임실20.1℃
  • 흐림순천19.0℃
  • 흐림제천17.0℃
  • 흐림영월16.2℃
  • 흐림양산시21.0℃
  • 흐림충주19.2℃
  • 흐림진주19.1℃
  • 흐림광주20.4℃
  • 흐림순창군20.0℃
  • 흐림대전20.6℃
  • 비서귀포21.6℃
  • 흐림북부산21.5℃
  • 흐림서산19.8℃
  • 비울산20.5℃
  • 흐림거제20.4℃
  • 흐림태백16.3℃
  • 맑음철원15.3℃
  • 비여수19.9℃
  • 흐림해남20.5℃
  • 구름많음원주18.6℃
  • 흐림영천20.4℃
  • 흐림남해20.3℃
  • 구름많음동해21.9℃
  • 흐림이천18.6℃
  • 흐림고창군
  • 흐림성산21.2℃
  • 흐림부여20.6℃
  • 흐림경주시20.0℃
  • 맑음파주15.1℃
  • 흐림밀양20.2℃
  • 흐림서청주20.4℃
  • 흐림대구21.0℃
  • 흐림장수19.0℃
  • 흐림상주20.4℃
  • 흐림포항21.8℃
  • 흐림세종19.6℃
  • 흐림진도군20.1℃
  • 비부산20.5℃
  • 흐림고산21.6℃
  • 흐림의성20.2℃
  • 흐림김해시20.4℃
  • 흐림봉화16.6℃
  • 흐림부안22.3℃
  • 구름많음강릉22.9℃
  • 흐림홍성20.3℃
  • 맑음동두천15.6℃
  • 흐림영주18.6℃
  • 맑음속초21.8℃
  • 흐림보성군20.4℃
  • 흐림군산21.5℃
  • 흐림보은18.8℃
  • 맑음북춘천16.0℃
  • 흐림의령군19.7℃
  • 흐림강진군20.4℃
  • 구름많음홍천15.8℃
  • 맑음춘천16.1℃
  • 비제주21.1℃
  • 흐림고흥20.4℃
  • 흐림안동20.5℃
  • 비창원20.8℃
  • 흐림광양시19.9℃
  • 구름많음양평17.9℃
  • 흐림울진20.2℃
  • 구름많음대관령14.4℃
  • 흐림정읍22.3℃
  • 흐림장흥20.4℃
  • 흐림청송군18.7℃
  • 흐림합천19.6℃
  • 흐림보령21.4℃
  • 흐림함양군19.2℃
  • 흐림구미22.1℃
  • 흐림고창20.7℃
  • 맑음인제13.3℃
  • 구름많음정선군14.3℃
  • 흐림금산20.1℃
  • 흐림완도20.2℃
  • 흐림천안18.5℃
  • 구름많음북강릉21.9℃
  • 박무백령도15.6℃
  • 흐림추풍령20.0℃

[세상의 창] 정강의 변_정승열 법무사(대전)

김민주 / 기사승인 : 2020-05-21 12:08:00
  • -
  • +
  • 인쇄
정승열.jpg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몽골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강화도로 천도했다가 42년 만에 항복하여 몽골의 부마국이 되고, 또 만주족이 침략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가 40일 만에 청 태종에게 꿇어앉아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있다. 하지만, 중국 송도 여진족의 금(金)과 맺은 정강의 변(靖康之變)은 국방을 소홀히 하고, 문치주의를 편 송의 업보로서 우리에게도 훌륭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은 당쟁과 환관의 정권 농단으로 안녹산, 사사명, 황소의 난이 잇달아 일어나더니, 마침내 군사력을 가진 절도사들의 할거로 큰 혼란에 빠졌다. 주전충(朱全忠)이 당을 찬탈하여 양(梁)을 세우고, 산시성의 이극용(李克用)이 진(晉)을 세운 뒤 양을 압도하더니, 후당(後唐)은 다시 후진(後晉)에게, 후진은 후한, 후한은 후주에 뺏고 빼앗기는 등 5대 10국이 들어서는 세력다툼 속에서 질서를 찾았다. 이때 후진의 석경당(石敬塘)이 후당을 멸망시키면서 거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만리장성 남쪽의 이른바 연운 16주(燕雲十六州)를 떼어줄 것을 약속했고, 937년 거란은 연운 16주를 차지했다. 이곳은 만리장성 남쪽인 지금의 베이징 일대였다.
 
조광윤이 5대 10국을 거쳐 송을 건국했지만, 연운 16주는 여전히 거란이 점유한 채였다. 태조 조광윤은 장군들의 세력을 억누를 심산에서 문치주의 정책을 펴서 나라는 점점 문약해졌다. 이때 만리장성 너머 북쪽 랴오허강 상류에서 몽골족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통합하고 발해를 멸망시키더니, 국호를 요(遼)로 바꾸고 성종(聖宗: 983~ 1031)과 섭정하던 소태후(蕭太后)는 고려를 침략한 여세를 몰아 1004년 20만 대군을 이끌고 송을 공격했다. 결국, 군사력이 없던 송은 수도 개봉에서 하루 거리밖에 안 되는 전주(澶州)까지 남하한 요와 회담하고 조약을 맺으니, 이것이 ‘전연의 맹약(澶淵의 盟約)이다. 전연이란 전주의 또 다른 지명이다.
 
1004년 송과 요가 체결한 전연의 맹약 4개 조는 아래와 같다.
 
⓵ 송은 매년 요에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보낸다.
 
⓶ 송의 진종은 성종의 모친(소태후)을 숙모로 삼고, 양국은 형제의 교분을 갖는다.
 
③ 양국의 국경은 현 상태로 하고, 양국은 포로와 월경자(越境者)는 서로 송환한다.
 
④ 송의 황제와 요의 황제는 형제 관계를 갖는다.
 
이 조약은 평소 하늘의 자손이라며 황제를 자칭하던 한족이 야만족으로 여기던 북방민족의 군주를 황제라 칭하고, 대등한 형제 관계를 받아들이고, 성종의 어머니 소태후와 숙질 관계(叔姪關係)를 간주하고, 또 매년 막대한 물자의 조공을 약속하는 굴욕적인 수치였다. 송은 이민족에게 재물을 주고 평화를 산 꼴이 되었지만, 체면을 중시하던 송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인적 손실에 비하면 그리 큰 손해가 아니라고 자위했다. 그렇다고 국방력을 키워서 대항할 정책을 취하지도 않은 채, 1125년 정강의 변으로 금에게 망할 때까지 120년 동안 현실에 안주하여 평화를 유지했다.
 
한편, 송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여진족의 아골타가 부족을 통일하더니, 황제로 즉위하면서 국호를 금(金)이라고 했다. 그러자 못난 송은 오랫동안 한족의 영토였던 연운 16주를 되찾으려는 야심에서 금에게 접근하여 요에 지급하는 조공물을 금에게 주고, 연운 16주의 회복을 노렸다. 하지만, 금에게 약속한 전비를 지급하기는커녕 금에 쫓겨 달아난 요의 천조제(天祚帝)와 몰래 동맹을 맺고, 금을 협공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요의 천조제가 금에게 붙잡히면서 송의 계획이 발각되자, 금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송의 공격에 나섰다. 금이 송의 수도 개봉을 공격하여 흠종(欽宗)과 휘종(徽宗) 부자를 비롯한 황족, 관료 등 3천여 명이 포로로 잡으니, 이것이 정강의 변이다. 정강이란 흠종의 연호이다. 송은 금에게 굴복하면서 신하의 예를 취하고, 매년 은 25만 량, 비단 25만 필을 조공한다는 치욕적인 조약을 맺고 휘종은 아들 흠종과 금으로 끌려가고, 금은 장방창(張邦昌)을 송의 새 황제로 옹립하고 철군했다.
 
몽골족 요와 형제관계와 조공을 맺더니, 이제 또 만주족과 군신관계를 맺고 조공하게 된 것이다. 송이 동시에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갖게 된 것은 금이 쳐들어오자, 휘종이 제위를 황태자 조환(趙桓)에게 물려주고 강남으로 도망쳤다가 모두 붙잡혔기 때문이다. 진시황제 이래 유아독존적이던 황제는 이제 그 빛을 잃고, 야만족이라고 멸시하던 이민족도 세력을 쥐면 황제가 되었다. 정강의 변은 자주국방에 의하지 않고, 원조라는 이름의 조공으로 평화를 사려고 하는 못난 정치인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역사이다.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ISSUE

뉴스댓글 >

많이 본 뉴스

교육

경제

정치

사회

생활/문화

IT/과학

엔터

스포츠

자격증

취업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