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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아, 무안양파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4-07-11 1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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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안양파

라이채


쭉쭉 뻗은 양파 잎들이 짭조름한 바닷바람 타고 녹색 물결을 이루던 황토들녘. 그 길을 따라 시오리를 걸어 중학교에 다녔다. 먼 길인지라 한동네 선후배들이 모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무리를 지어 다니곤 했다. 하굣길에 피곤함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선 이야깃거리와 군것질거리가 필요했다. 가끔 잔치 후 남은 음식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부모님 눈치채지 못하게 학용품값을 조금 더 받아온 아이가 한턱 쏘는 날엔 쫀득이 과자 한두 개쯤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그도 저도 없는 날엔 길가 고구마 밭에 숨어들어 고구마 두어 개씩 캐내어 풀섶에 쓱쓱 문질러 날로 씹어 먹기도 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양파 밭엔 쩍쩍 갈라진 붉은 흙 사이로 밑이 들대로 든 양파가 토실토실한 허연 살을 내비치고 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함께 다니던 아이들은 며칠째 그 먹음직스러운 양파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나 기회잡기가 녹록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까꾸리’ 때문이었다. ‘까꾸리’는 우리가 붙여준 한 사내아이의 별명이었다. 우리 또래거나 한두 살 더 먹어 보였다. 빛바랜 노란 셔츠에 갈고리같이 생긴 코에 그을린 얼굴을 하고서 매일 들녘 한가운데에 허수아비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좀 안 돼 보이긴 했지만 계속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이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를 약 올려주려고 ‘노란 샤쓰 입은 말 없는 까꾸리가 어쩐지 나는 싫어, 어쩐지 나는 싫어’라고 유행가 가사를 바꿔 큰 소리로 불러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어쩐 일인지 그 아이가 들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린 이구동성으로 이제 우리의 놀림에 그 아이가 항복한 것 같다고 소곤댔다. 마침 보슬비가 내린 끝이라 인적 없는 들판엔 안개만이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우린 일제히 양파밭으로 뛰어들었다. 땅이 촉촉해져 둥근 양파가 쑥 뽑혔다. 한 개로는 아쉬운듯하여 두 개를 더 뽑아서 잎과 뿌리를 따내고 도랑물에 씻었다. 태연히 신작로로 나와 두 개는 접은 우산 속에 넣고 한 개는 껍질을 벗겨 물오른 양파 살을 아삭아삭 한입 베어 물고 있던 찰나 “느그들 거기 섰지 못허냐!” 하는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혼비백산한 아이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달리기를 잘못하는 나는 발걸음이 마음먹은 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만 홀로 한길에 남아있었다. 양파밭 주인인 듯한 아저씨가 내게 성큼 다가섰다. 내 손과 입에서 나는 양파냄새를 금세 맡아보더니 명찰을 떼 내며 학년, 반을 물었다. 그리고는 “요새 양파서리가 극성인디…학교에 알릴 수밖에 없구먼-” 하고 단단히 벼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돌아갔다.

곧이어 숨죽이고 있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나 때문에 들통이 났다며 모두 원망이 가득했다. 한편 저마다 밭 주인아저씨를 따돌릴 수 있었던 순발력을 자랑했다. 1학년짜리 내 동생도 우선 양파를 풀섶에 던져버리고, 잽싸게 명찰을 숨긴 뒤 아저씨가 이름을 묻자 ‘황정아’ (당시 TV 탤런트의 이름) 라고 대답했다며 “언니는 바보!” 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 날 밤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생활지도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고 가슴 졸이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선생님이 “양파 서리에 가담한 놈들 이름 모두 불어!” 라며 손에 든 회초리에 힘을 주었다. 나는 순순히 그 이름들을 대었고, 우리는 벌로 종아리 다섯 대씩 맞고 일주일간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여전히 양파 밭은 푸르렀으나 우리를 대하는 ‘까꾸리’의 모습이 사뭇 달라보였다. 승자가 패자에게 보내는 회심의 미소랄까. 우리는 우리를 고발한 게 바로 그 아이의 소행임을 알아차렸고, 곧이어 앙갚음할 방도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우리학교 소풍날이었다. 마침 장날이라 시장에 팔 물건을 이고지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들에 있어야 할 ‘까꾸리’도 그날따라 그 행렬에 끼어있었다. 큰 짚 가마니가 실린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기회가 왔음을 감지하고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우선 그 아이가 끄는 손수레 뒤를 따랐다. 얼기설기 엮은 짚 가마니 사이로 새끼돼지들이 꿀꿀거렸다. 산 언덕배기를 오를 때는 선심 쓰듯 밀어주었다. ‘까꾸리’가 고개를 돌려 고마운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내리막길에서는 일제히 올라탔다.


아, 그러나… 갑작스레 짓눌린 손수레가 뒤로 처박히면서 우리들은 짚 가마니와 함께 땅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까꾸리’도 운전대에 매달려 허둥거리고 있었다. 터진 가마니 속에서 기어 나온 새끼돼지들이 소나무 숲속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우린 다친 다리를 이끌고 새끼돼지들을 잡기 위해 쫓아갔다. 이러저리 뛰는 ‘까꾸리’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았다. 짚 가마니 입구를 새끼줄로 찬찬히 동여매고 있는 ‘까꾸리’의 품새가 말해주었다.


후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보니 멋 부려 신었던 하얀 스타킹은 뻥 뚫리고, 무릎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방 한켠에 어머니가 고이 넣어주신 삶은 계란도 만신창이기 되어있었다. 헐레벌떡 도착한 학교 운동장엔 소풍행렬이 떠나버린 뒤 텅 비어있었다.
양파서리에 얽힌 알싸한 이야기는 무릎에 난 상처와 함께 추억 속에 남게 되었다. 가끔 야채가게에 들러 ‘무안양파’라는 내 고향 이름표를 당당하게 달고 있는 황토 빛 양파를 볼 때면 그 때 먹다만 아삭한 양파 맛이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번지곤 한다. 

 



* 라이채 작가
전「한국문인」주간 역임.
번역문학가
미 연방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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