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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빛바랜 판문점 선언 - 정승열 법무사

/ 기사승인 : 2019-05-02 13: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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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은 남북이 판문점에서 3차 정상회담 후 발표한 판문점 선언 1주년이 되는 날이다.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 남북 관계개선, 그리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 추진 등인데, 이것은 2007년 DJ와 김정일 간에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후 발표한 ‘10·4공동선언’과 비슷하지만 시기와 방식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남북은 휴전선에서 적대행위 중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경제 협력하며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등을 합의하고, 2018년 5월 1일부터 휴전선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등을 중지했다. 그렇지만, 2월 27일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김정은이 우리 정부와 트럼프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하고, 대남 선전 매체를 동원하여 연일 대남비방을 일삼고 있다. 어쩌면 2018년 1월 김정은의 신년사 이전으로 되돌아간 느낌마저 들게 하는데도 우리 정부는 이날 판문점에서 국회, 각계 인사 등 500명의 내외 빈을 초청해서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의 예술가들이 펼치는 공연을 필두로 6곳에서 공연을 벌였다.

 

사실 김정은은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회담 이후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초조함을 이용하여 큰 양보를 얻어내려고 미적댔지만, 트럼프가 중간 선거를 무난히 넘기자 2차 회담에 응했으나 회담이 결렬되자 핵 발사대를 재가동하는 한편 남한과 미국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판문점 선언 1주년을 이틀 앞둔 4월 25일 블라디보스톡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북․러정상회담을 하고, 한반도 비핵화 지지와 북한 체제보장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은 김정은이 1월 8일 베이징에서 중국 시진핑과의 회담 후 하노이회담 결렬되자 우방국의 지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의 표시였고, 푸틴으로서도 그동안 중국에 기울어진 북한의 주목도 받고 북미대화에서 소외되다가 유명무실해진 ‘한반도 6자회담’을 구실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보인 회담이었다. 또, 푸틴은 이번 주 북경에서 시진핑과 만날 예정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많은데, 김정은도 시진핑과 만난 지 4개월 만에 재차 중국을 방문하거나 시진핑을 초청해서 북․중 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돌아보면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고 28살의 김정은이 권좌에 올랐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체제안정에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그는 이런 분석을 비웃듯이 할아버지 김일성이 1948년 9월 북한을 건국한 이후 70년 동안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이룩한 능력을 뛰어넘어 국제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것은 오로지 핵무기 개발을 완성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다.  그런 김정은이 확실한 담보 없이 핵을 폐기할 것으로 믿는다면, 믿는 사람이 바보이다.

 

그런데, 철저한 장사꾼 출신 트럼프도 김정은을 과소평가하고 그를 국제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해주었고, 또 북한과 미국의 중간자 역할을 자임하며 세계 각국과 국제회의를 돌아다니며 미국의 대북 제제 완화를 요청 했지만 각국 정상들로부터 외면 받은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미국이 아닌 북한을 지지하고 있다고 불신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미 언론으로부터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비난까지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미․소를 두 축으로 한 냉전체제가 형성되어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했지만, 1980년대 말 미국은 세계평화와 공존을 위협하는 생화학, 핵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거나 국제테러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북한, 수단, 시리아 등을 불량국가(rouge state)라고 하는 새로운 적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마약 밀매는 물론 고도의 컴퓨터 해킹기술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데, 북한은 1987년 12월 KAL 858기 폭파사건 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불량국가 중에서도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규정했지만, 한반도 6자회담이 진행되면서 북한이 2008년 10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검증’에 합의하자 즉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그러나 2017년 2월 김정남 암살사건과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9년 만에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유엔도 그동안 북한을 수차 핵 개발에 대한 제제로 규제 결의안을 의결하고 있지만, 우리는 김정은이 유일한 카드인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업적 쌓기에 안달하고 있지만, 3대 세습 왕조 국가인 김정은에게는 그런 선거가 없기 때문에 결국 트럼프는 쫓기는 입장이고 김정은이 느긋하게 관망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중개자 역을 자임한 대통령이 북미로부터 불신을 받고,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된 평양과의 핫라인은 무용지물이 되고, 개성에 문을 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개점휴업상태이고, 지난 1년여 동안 수십 차례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북 제제 완화를 설득하러 다녔어도 외면 받은 대통령의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는 마음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리고 이날을 기념하는 축하공연은 어느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 한편의 코미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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