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 흐림홍천2.2℃
  • 흐림영덕5.9℃
  • 흐림동해5.1℃
  • 흐림인제1.4℃
  • 흐림순창군6.2℃
  • 흐림춘천1.5℃
  • 흐림합천4.9℃
  • 흐림해남7.1℃
  • 흐림흑산도6.0℃
  • 흐림천안4.1℃
  • 흐림고흥6.2℃
  • 흐림양산시6.4℃
  • 흐림대관령-1.9℃
  • 흐림철원0.6℃
  • 흐림서청주3.5℃
  • 흐림보령5.7℃
  • 흐림정읍5.7℃
  • 흐림장흥6.8℃
  • 비북춘천1.9℃
  • 흐림상주3.0℃
  • 흐림문경3.2℃
  • 흐림태백-0.4℃
  • 흐림울릉도6.3℃
  • 흐림거창2.6℃
  • 흐림경주시5.9℃
  • 흐림강화1.0℃
  • 흐림양평4.4℃
  • 흐림구미4.5℃
  • 흐림임실5.4℃
  • 비전주5.8℃
  • 흐림부여5.4℃
  • 비청주4.0℃
  • 흐림광양시5.9℃
  • 비서울2.9℃
  • 비수원3.7℃
  • 비대전4.9℃
  • 흐림남원5.4℃
  • 흐림원주3.6℃
  • 비포항7.0℃
  • 흐림군산5.1℃
  • 비목포6.6℃
  • 흐림진도군6.7℃
  • 흐림정선군1.7℃
  • 흐림강릉4.2℃
  • 흐림추풍령2.5℃
  • 흐림충주3.7℃
  • 흐림동두천0.8℃
  • 흐림거제6.8℃
  • 흐림청송군4.2℃
  • 흐림남해5.5℃
  • 흐림함양군2.8℃
  • 비제주8.7℃
  • 흐림강진군6.9℃
  • 흐림영월3.7℃
  • 흐림서귀포11.2℃
  • 흐림성산8.8℃
  • 흐림의령군4.3℃
  • 흐림서산3.9℃
  • 비북부산6.4℃
  • 비북강릉3.3℃
  • 흐림세종4.4℃
  • 흐림속초3.8℃
  • 비여수5.7℃
  • 비창원6.4℃
  • 비백령도2.4℃
  • 흐림영주3.3℃
  • 비울산5.9℃
  • 흐림장수4.3℃
  • 흐림밀양6.6℃
  • 흐림금산4.7℃
  • 흐림봉화3.8℃
  • 비안동4.0℃
  • 흐림통영6.1℃
  • 흐림고창군5.5℃
  • 흐림김해시5.8℃
  • 흐림산청2.7℃
  • 흐림의성5.3℃
  • 흐림이천2.4℃
  • 흐림제천3.3℃
  • 비광주5.9℃
  • 흐림영천5.8℃
  • 흐림보은3.9℃
  • 비인천2.8℃
  • 비대구4.4℃
  • 흐림부안5.8℃
  • 흐림보성군6.6℃
  • 흐림완도7.0℃
  • 비홍성4.5℃
  • 흐림고창6.0℃
  • 흐림고산8.4℃
  • 비부산6.4℃
  • 흐림울진5.9℃
  • 흐림영광군5.9℃
  • 흐림진주4.9℃
  • 흐림순천5.7℃
  • 흐림파주0.1℃
  • 흐림북창원6.5℃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김민주 / 기사승인 : 2018-01-23 12:21:00
  • -
  • +
  • 인쇄

공무원수험신문 242-12-2.jpg
 
 

최근 소방공무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소방관은 언제 어디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세종 8년이던 1426215일 한향의 어느 초가의 아궁이에서 튄 작은 불똥이 대화재로 번져 민가 약 2,100호와 행랑 106칸이 불에 타고 사상자만 32명에 달하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확실한 대책이 필요했던 조선은 1426226, 이런 대화재를 막기 위해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했다. 금화도감에는 불을 끄는 군인들인 금화군이 소속되고 있었고, 이 금화군이 세조 시절 확대되어 바로 멸화군(滅火軍)으로 발전했다.

 

멸화군은 약 50명 정도의 군인들로 구성되었는데, 그중에는 물을 긷는 일을 하는 여자 종, 급수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멸화군은 종루에 올라 한양을 내려다보며 불을 감시하거나 바람이 강한 날에는 야간순찰을 돌며 화재 예방 활동을 했다. 현대 소방서의 주 임무인 화재 사전 예방 활동과 아주 비슷한 일을 한 것이다.

 

멸화군은 불이 나면 급수비자가 길어온 물로 불을 끄거나, 더 큰 화재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불이 난 집을 철거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멸화군에게는 도끼와 동아줄, 쇠갈고리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중종 5(1453) 17일 밤, 세자가 머무는 동궁에 불이 났을 때 멸화군은 승화당을 허물어 불이 왕과 왕비가 기거하는 강녕전으로 번지는 걸 막다. 제때 화재를 진압해서 종묘사직을 지켜냈다.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ISSUE

뉴스댓글 >

많이 본 뉴스

초·중·고

대학

공무원

로스쿨

자격증

취업

오피니언

종합